1일차: 새벽은 삶을 되찾는 시간이다
호랑이처럼 힘이 세도 호랑이의 무늬를 가지지 않으면 호랑이가 아니고, 표범처럼 사나워도 표범의 무늬가 없으면 표범이라고 할 수 없다. 호랑이는 호랑이의 무늬로 호랑이라는 것을 알리지 스스로 호랑이라고 말해서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시간 안에 어떤 유의미한 일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새벽에 일어나는 것으로 나를 꾸미는 순간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바탕이 생겼다.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 무늬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 자신에게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더 이상 설득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17쪽
2일차: 필사는 길을 잃지 않게 해준다
《주역》에는 “지혜를 높고 원대히 하되 하늘처럼 하며, 실천은 땅과 같이 비근한 데로부터 시작된다(지숭예비 숭효천 비법지知崇禮卑 崇效天 卑法地)”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하고자 할 때 바로 다가서려 하면 오히려 다가서기 어렵다. 나에게 필사는 그물을 짜며 준비하는 비근한 발걸음이었다. 당장 바다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지만, 나는 필사를 하면서 내 위치에서 내 속도에 맞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비루한 지식을 얻은 것에 불과할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고,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24쪽
10일차: 포기하기 싶을 때쯤 ‘거의 다 온 것’이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 모든 방향이 꽉 막힌 진퇴양난의 상황에서도 머물 곳을 찾아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사람을 자포자기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든다. 삶이 내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 더욱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되고, 부득이함에 나를 맡기는 순간 순응보다는 돌파하려는 욕구가 더욱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장자의 “거의 다 온 것”이라는 말은 의지를 최소화하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득이함 속에서 최소한의 의지는 더 이상 미약하고 보잘것없지 않다. 많은 것을 포기하더라도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생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약한 의지로만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70~71쪽
12일차: 나를 잃었을 때 더욱 성숙해진다
어린 시절에 나를 잃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독립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온전히 나를 지킬 수 있었다고 오해한 것은 책임이 따르지 않는 방종을 자유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온전히 나의 힘과 의지가 결여되었던 때이다. 혼자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임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뿐이었다.
_84쪽
14일차: 나를 귀하게 만드는 것은 나다
나는 언제부턴가 모든 것을 조용히 가슴속에 간직한 채 완성되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나 역시 끝을 내야 확인할 수 있다. 중간에 남과 공유하면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처음 나의 의도를 잃지 않기 위해 마무리가 된 후에 평가를 받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유익할 것이다. 잘못된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온전히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96~97쪽
25일차: 적당한 거리가 지나친 가까움보다 낫다
좋은 관계는 신뢰에 의해서 지속되는 것이지 친밀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나칠 정도로 친밀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신뢰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실로 서로 통하는 사람은 흐르는 강처럼 잔잔하지만, 겉으로만 친분을 과시해야 하는 사람의 조급함은 거칠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진다. 그래서 신뢰가 있는 관계에서 지나친 친밀함은 필요 없다.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로를 과하게 칭찬하거나 거짓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164~165쪽
26일차: 무례한 사람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하라
공자는 “원망의 감정을 숨기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은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던 것이고, 나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닉원이우기인 좌구명치지 구역치지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라고 했다. 원망하는 마음을 숨기고 모르는 척하면서 건강한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다. 나는 무례하게 구는 사람의 행동을 묵인하고 심지어는 좋은 낯빛으로 대할 때도 있었다. 나쁜 것을 보면 불편해지고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듣기 힘든 말을 들을수록 감정을 드러내기가 어려웠다. 현명하게 말해서 깨우쳐줄 지혜도 없고, 분노를 드러내서 싫다는 마음을 분명히 표현할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에게 나쁜 것은 더 이상 그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172쪽
28일차: 무리한 부탁은 정중하게 거절하라
내가 솔직히 거절해야만 할 때 그에 대한 평가는 나의 몫이 아닌 상대방의 몫이다. 반대로 내가 거절당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또한 내 마음에 달려 있다. 장자는 “가장 큰 호의는 잔혹하다(대인불인大仁不仁)”고 했다. 호의는 적당한 선에 머물 때 가장 좋다는 의미이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정도로 지나친 호의는 자칫하면 호의를 보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관자》에는 “보통 사람은 마음을 씀에 있어 아낌이 미움의 발단이 되고, 은혜가 원망의 원인이 된다(중인지용기심야 애자증지시야 덕자원지본야衆人之用其心也 愛者憎之始也 德者怨之本也)”는 구절이 있다. 미움과 원망은 모두 호의에서 나온다고 한다. 따라서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불편한 것은 표현해야 오히려 좋은 관계가 된다.
-183쪽
37일차: 가족 간에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라
자식에게 얼마나 이로운 일을 했는지 따져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나의 보살핌과 지원을 자랑하는 일은 아이에게 그 보살핌을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느끼게 할 뿐이다. 나의 헌신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아이에게 우리가 의리가 아닌 이익 관계라고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근사록》에는 “사람이 공정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이미 사사로운 마음이다(공자천리지자연 유의위지 즉계교안배 즉시사의公者天理之自然 有意?之 則計較安排 ?是私意)”라는 말이 나온다. 자식에게 물질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공정하게 대하려고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사사로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의도적으로 계산하고 안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공정하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237쪽
41일차: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끝이 없다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기보다는 믿기만 해도 스스로 잘 해나갈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언제나 그런 이상적인 예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예외에 내 아이의 인생을 시험해보고 싶지는 않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믿음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단호하게 방향을 일러주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명심보감》에는 “아이를 사랑하거든 매를 많이 들고, 아이를 미워하거든 먹을 것을 많이 줘라(연아 다여봉 증아 다여식憐兒 多與棒 憎兒 多與食)”라는 말이 있다. 읽기에 따라서는 거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바라는 것만 해주고, 단호하게 훈계하지 못하는 것은 좋은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일 게다.
-262쪽